어떤 프로젝트는 “무엇을 만들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게임은 조금 달랐습니다.
먼저 코드가 있었던 것도, 멋진 기획서가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시작은 아이가 직접 종이를 접고, 얼굴을 그리고, 오려서 만든 작은 캐릭터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종이 인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설명을 듣다 보니, 제가 보고 있던 것은 종이 인형 네 개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화면 밖에 있는 게임의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종이 위에서 태어난 네 친구
갈색이, 블록, 착한좀비, 수호요정.
이름부터 아이가 직접 정했습니다. 손으로 그린 눈과 입은 조금씩 다르고, 종이를 접은 자국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잘 만든 게임 캐릭터 그림과는 분명 다릅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캐릭터를 반듯하고 멋진 그림으로 바꾸는 순간, 아이가 만든 무언가가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어떤 캐릭터가 먼저 나오고, 누가 더 크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모습만 비슷하게 만든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인공이 변해도, 곁에 남는 친구
게임은 갈색이로 시작합니다. 바위를 깨고 크리스탈을 모으면 블록으로, 다시 크리스탈을 모으면 착한좀비로 변신합니다. 크리스탈을 세 개씩 모을 때마다 다음 모습으로 나아가는 규칙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 모험을 함께하는 친구가 한 명 더 있습니다. 바로 수호요정입니다.
수호요정은 마지막에 변신해서 얻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주인공이 갈색이일 때도, 블록일 때도 주변을 날아다니며 지켜주는 작은 동반자입니다.
저는 그 설정이 귀여웠습니다. 이 세계에는 강해지는 주인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 있어 주는 친구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 모습을 그대로 움직이게 해 보면 어떨까?”
처음부터 거창한 게임을 만들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그린 캐릭터가 화면 안에서 걸어 다니는 모습만 봐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게임 제작은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은 일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AI에게 만들고 싶은 모습을 설명하고, 실제 화면을 확인하고, 조금씩 고쳐 보는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를 마음속으로 정했습니다. 종이 캐릭터를 흔한 게임 그림으로 바꾸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삐뚤어진 눈과 손으로 칠한 표정까지 이 게임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처음 초록색 풀밭이 화면에 나타났을 때, 바위와 나무 사이에 갈색이가 있었습니다. 옆에는 작은 수호요정이 떠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 가만히 놓여 있던 종이가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신기하면서도 조금 웃음이 났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웹게임의 첫 화면이겠지만, 저에게는 조금 전까지 손에 들고 있던 종이 조각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아이는 이미 다음 장면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캐릭터를 움직이게 만든 것만으로도 제법 큰일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이야기는 그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바위를 깨면 아이템이 나오고, 동굴에는 위험한 존재가 있고, 크리스탈을 모으면 새로운 모습이 된다고 했습니다. 하늘을 날 수도 있고, 바닷속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종이 캐릭터 몇 개를 움직이는 게임을 생각했는데, 아이는 그 캐릭터들이 살아갈 세상 전체를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자 종이는 금세 글로 가득 찼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A4 한 장으로도 부족해졌습니다.
캐릭터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일이 시작이었다면, 다음은 그 작은 종이 친구들이 떠날 모험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