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길 수 있었을 테고, 이미 잊어버린 순간들도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남기고 싶은지, 왜 기록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이 이제야 조금씩 정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내가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무언가를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들. 시간이 지나 같은 문제를 다시 만났을 때 참고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언젠가 아이가 내가 남긴 기록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내가 무엇에 관심을 가졌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가족과 함께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남기고 싶었다.
아이와 함께 게임을 만들었던 경험을 첫 번째 개발 이야기로 남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 시간이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어떤 교훈이나 메시지를 남기고 싶기도 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관이나 경험을 통해 배운 것들이 언젠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생각을 거듭할수록 조금 달라졌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이에게도 중요할까. 내가 좋은 경험이라고 여겼던 일을 아이도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일까.
같은 일을 겪더라도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다. 살아온 환경과 경험에 따라 같은 이야기에서도 전혀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미리 정해놓고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실제의 나보다 보여주고 싶은 나를 남기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남기자.
내가 무엇을 좋아했고, 어떤 선택을 했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별다른 이유 없이 무언가에 몰두했던 순간이나, 생각이 바뀌었던 과정도 좋다.
모든 경험에서 교훈을 찾아낼 필요도, 좋은 모습만 남길 필요도 없다.
그 기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읽는 사람의 몫이다. 훗날 아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도 아이에게 맡기고 싶다.
그러다 문득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아이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생길 텐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남기고 싶거나,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그때의 나이지 않을까.
지금은 있는 그대로를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처음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앞으로 생각이 또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진짜 나이고 다른 한쪽은 아닌 것도 아니다.
진정성은 생각이 일관된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각 시점의 생각에 솔직한 데서 나올 수도 있다는 것.
이 문장이 지금의 내 생각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생각이 달라지더라도 과거의 기록을 지금의 기준으로 고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고 남기면 된다.
다시 처음의 생각으로 돌아온다.
조금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때의 생각과 경험을 지금보다 생생하게 남길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때의 내가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기록했을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고, 지금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남겼을 수도 있다.
그것도 그때의 나였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기록을 남기게 될지, 얼마나 오래 이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지금의 생각도 언젠가는 달라질 수 있다.
그저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남기고 싶다.
훗날 다시 읽었을 때 생각이 달라져 있다면, 그때는 또 그 생각을 남기면 된다.